Today
-
Yesterday
-
Total
-
  • 너는 왜 A 드라이브 하나 밖에 없니?
    Life/Miscellaneous 2019. 12. 30. 17:47

    내 어린 시절, IBM XT란 기종의 컴퓨터가 대중화 되었고 IBM AT가 새롭게 등장하던 시기의 이야기이다. 당시 XT에는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하나 또는 두 개를 달았다. 좀 괜찮은 컴퓨터는 2개의 드라이브가 달려 있어서, 첫번째 드라이브에 부팅 디스켓을 꼽았고, 다른 드라이브에 응용 프로그램이나 데이터를 저장하는 디스켓을 넣었다. 하나만 달려 있으면 부팅 후에 작업 디스켓으로 갈아 끼워야 했다.

     

    플로피 디스크는 하드 디스크가 대중화되지 전에 사용하던 저장 매체이다. 하드 디스크와 비교하면 용량이 적을 뿐만 아니라 읽고 쓰는 속도가 매우 느렸다.

     

    이 시절을 상상하기 힘들다면, 초기 버전의 USB 포트만 존재하는 컴퓨터와 8MB 메모리 스틱만 존재하는 세상을 떠올려보자. OS 부팅용 메모리 스틱 한 개, 게임/응용 프로그래밍/데이터 저장 등의 용도로 각각 추가 스틱을 준비해야 한다. 작업에 맞게 그때 그때 메모리 스틱을 갈아끼우면서 사용한다. 물론 초기 버전의 USB 답게 읽기/쓰기는 답답하게 느리다.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보자. 이 즈음에 친구네 집에 놀러가서 컴퓨터를 발견했다. 이 친구는 가엽게도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가 하나 밖에 없었다. 두 개가 얼마나 편한지 친구에게 설명했다. 잘 사는 친구인 줄 알았는데, 컴퓨터는 생각보다 좋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우리집도 컴퓨터를 장만했다. 훨씬 빠르고 용량이 큰 하드 디스크가 달려있었다.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는 하나면 충분했다. 플로피 디스켓은 단지 데이터 이동이나 백업 용도로 쓰임이 줄었기 때문이다. 어쨌튼, 하드 디스크를 사용해보니 이전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편했다.

     

    그리고 가엽다고 생각했던 친구의 컴퓨터에 하드 디스크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친구가 컴퓨터 게임을 이것 저것 실행할 때, 플로피 디스켓을 갈아끼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구가 하드 디스크 이야기를 한 것도 같은데, 기억에 없는 이유는 나의 인식 범위를 벗어나서 이해할 수 없었던 것으로 추론한다. 저장 매체는 오직 플로피 디스켓라는 세상에 견고하게 갇혀있었기 때문이리라. 즉, 모른다는 것 조차도 몰랐다.

     

    모른다는 것을 인식하면 차라리 낫다.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모른다는-또는 틀렸다는- 것 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훨씬 심각하다. 지금도 나는 "너는 왜 A 드라이브 하나 밖에 없니?"와 같은 소리를 하고 있을 것이다.

    댓글

Designed by Tistory.